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서 추미애 의원이 김동연 현 지사를 꺾고 본선행 티켓을 확정 지었다. 당내 강성 지지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업고 다시 한번 정치적 체급을 키운 셈이다. 1995년 정계 입문 이후 30여 년간 극적인 부침을 거듭해온 그녀의 정치 일대기는 한국 현대 정치사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8년 대구에서 태어난 추미애는 한양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의 길을 걸었다. 춘천·인천·전주지법과 광주고법 등지에서 판사로 재직하던 그녀는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였던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듬해 제15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 을에 출마해 당선되며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판사 출신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1997년 대선 당시에는 김대중 후보 캠프에서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본부장으로 맹활약하며, 잔다르크에 빗댄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얻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승승장구하던 그녀에게 가장 큰 정치적 위기는 2004년에 찾아왔다. 새천년민주당 소속이던 그녀는 당초 '3불가론'을 내세우며 탄핵에 반대했으나, 당내 압박이 거세지자 막판에 입장을 바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소추 의결에 동참했다. 이는 엄청난 국민적 역풍을 불러왔다.
제17대 총선을 앞두고 돌아선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당 선거대책위원장 자격으로 광주 전남도청 앞에서 출발해 망월동 5·18 국립묘역까지 약 13km 구간을 2박 3일 동안 '삼보일배(三步一拜)'하며 사죄했다. 무릎과 허리를 다쳐 삼보일배를 마친 뒤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결국 총선에서 낙선하며 깊은 정치적 휴지기를 가져야 했다.
절치부심 끝에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다시 서울 광진구 을에 당선되며 정계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후 18·19·20대 3선에 연속 성공하며 당내 중진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2016년에는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해 승리, 민주당 계열 정당 역사상 최초의 대구·경북(TK) 출신 당대표가 되었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을 이끌고 2017년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기여하며 당을 성공적으로 지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0년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며 그녀의 정치 인생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검찰 개혁을 기치로 내건 그녀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과 사사건건 충돌하며 이른바 '추윤 갈등'의 중심에 섰다.
수사지휘권 발동, 검찰총장 징계 청구 등 초유의 사태가 연이어 벌어졌고, 정국은 극심하게 양극화되었다. 이 갈등이 결과적으로 윤석열 총장의 정치적 체급을 키워 대권으로 직행하게 만든 빌미가 되었다는 비판과, 검찰 개혁을 위해 불가피한 십자가를 졌다는 지지층의 옹호가 지금도 극명하게 엇갈린다.
장관직 퇴임 후 제20대 대선 당내 경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하며 다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던 추미애는 2024년 제22대 총선에서 정치적 텃밭이던 서울 광진구를 떠나 경기 하남시 갑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로써 헌정 사상 최다선 여성 국회의원(6선) 반열에 올랐다.
하남 당선을 통해 경기도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그녀는 이를 발판 삼아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당내 경선에서 현직 프리미엄을 가진 김동연 지사와 치열한 접전을 벌였으나, 선명성을 무기로 친명 강성 지지층의 결집을 이끌어내며 결국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추다르크'에서 '삼보일배', '법무부 장관'을 거쳐 이제 '경기도지사 후보'에 이른 추미애. 그녀의 직설적이고 타협 없는 정치 스타일은 언제나 강력한 팬덤과 거센 안티를 동시에 불러왔다.
이번 경기도지사 본선에서도 그녀 특유의 '선명성'이 1,400만 도민에게 어떻게 평가받을지가 최대 관전 포인트다. 30년 정치 역정의 새로운 승부수가 될 이번 도전, 그 결말은 유권자의 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