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예술의 기준은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예술가와 시장은 어떤 새로운 책임과 가능성을 마주하고 있을까.
세계 미술 시장을 오랜 시간 분석해온 저명한 예술경영학자, 이안 로버트슨(Iain Robertson) 교수는 이러한 질문에 깊이 있는 시선으로 답할 수 있는 인물이다. 런던 소더비 인스티튜트에서 미술 비즈니스학과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한국 홍익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유럽과 아시아 미술시장의 흐름을 날카롭게 분석해왔으며, 최근에는 한국 미술계의 변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는 서울 케이리즈 갤러리에서 열린 펠리즈 박 작가의 전시 현장에서 진행되었으며, AI 예술과 저작권, 시장 구조의 변화, 그리고 한국 작가들의 국제적 가능성까지 폭넓은 주제를 아우르며 이어졌다. 기술이 예술과 결합하는 전환기의 중심에서, 이안 로버트슨 교수의 통찰은 전통과 혁신, 시장과 철학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다음은 이안 로버트슨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김정균 기자: 안녕하세요, 교수님. 바쁘신 일정 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뉴미디어타임즈의 김정균입니다. 이번 인터뷰는 교수님의 통찰을 통해 AI 시대의 예술과 아트 비즈니스의 미래, 그리고 디지털 창작의 가치를 함께 조망하고자 마련되었습니다.
<교수님 소개 및 철학>
김정균 기자: 교수님께서는 오랜 기간 예술 경영 분야에 헌신해 오셨습니다. 이 길을 선택하신 근본적인 이유나 철학적 동기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안 로버트슨 교수: 저의 예술에 대한 관심은 다섯 살 때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회화를 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음악보다는 시각 예술에 훨씬 더 매료되었습니다.
김정균 기자: 소더비 인스티튜트 재직 시절을 포함한 교수님의 경력에서, 현재의 예술 경영 철학이나 미술 시장에 대한 통찰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특별한 경험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안 로버트슨 교수: 대학원 시절, 한 교수님께서 제가 네덜란드 미술 시장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 제게 17세기 네덜란드 미술 시장을 연구해 보라고 권하셨습니다. 제가 네덜란드어를 구사했기 때문이죠(어머니가 네덜란드 분이십니다). 스물여섯 살 때의 그 제안이 제가 미술 시장 연구라는 전 과정에 들어서게 된 출발점이었습니다.
김정균 기자: 2025년 현재, 글로벌 미술시장은 또 다른 변화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전통적인 컬렉터들의 수집 행태나 가치관에는 어떤 변화가 있다고 보시는지요? 또한 AI 외에 확장현실(XR)이나 지속가능성을 위한 기술 등이 미술시장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안 로버트슨 교수: 미술 시장은 분명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고 있으며, 이는 AI와 지속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주요 흐름으로 정의됩니다. 특히 서구에서는 예술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친환경'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친환경 미술은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AI는 또 다른 중요한 변화입니다. XR, 즉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혼합현실(MR)도 언급하셨죠. 이제 관객은 헤드셋을 통해 전시 공간이나 작품과 같은 공간에 있는 자신을 보고, 작품의 일부가 되거나 그 안에서 자신만의 현실을 만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XR 기술의 이러한 참여적 측면은 매우 중요한 발전입니다. 이제는 작가와 작품만이 아니라, 관객, 작품, 작가가 함께 상호작용하는 시대인 것이죠.
<한국 미술시장과 AI 아트에 대한 시선>
김정균 기자: 최근 한국에서는 AI를 활용한 예술 창작이 매우 활발합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AI가 단순히 새로운 창작 도구를 넘어, 한국 예술가들의 사회적 역할이나 예술적 정체성 확립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이안 로버트슨 교수: 오픈AI의 달리(DALL-E),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 ChatGPT의 등장은 AI의 민주화를 이끌었습니다. 이로 인해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도 AI 아티스트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기존과는 상당히 다른 경로입니다. 예를 들어, 예술가 그룹 '오비어스(Obvious)'는 미술가가 아니라 기술자, 즉 엔지니어들입니다. 그들이 이토록 깊이 예술에 관여한다는 사실은 AI가 단순한 부가 기술을 넘어 예술 자체에 내재된 근본적인 힘이 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김정균 기자: AI로 만들어진 작품이 하나의 독립된 예술 분야로 인정받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미학적 혹은 철학적 요소는 무엇인가요?
이안 로버트슨 교수: 가장 큰 문제는 AI가 모든 작가의 고유한 '수준 높은 작품'에 대한 기준을 담아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작가마다 그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AI가 만든 결과물은 결국 매우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의 영혼과 창의성은 여전히 AI를 능가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AI 아트에서 느끼는 아쉬움은 그것이 종종 정교한 복제품(facsimile)을 떠올리게 하며, 아직 진정으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김정균 기자: 한국의 젊은 AI 작가들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어떤 기술적 역량, 예술적 소양, 네트워킹 전략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안 로버트슨 교수: 현재 활동하는 한국 작가들은 가능하다면 해외에 있는 대형 갤러리에 합류하고 그곳에서 전시를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한 핵심적인 방법은 베니스 비엔날레와 같은 행사에 참여하거나, 유수의 서구 미술관들의 주목을 받아 그들의 기획 전시에 작품을 선보이는 것입니다.
김정균 기자: 더불어, 이들이 전통 매체 작가들과는 어떻게 다른 커리어 패스나 시장 접근 방식을 개척해 나가야 할까요?
이안 로버트슨 교수: 앞서 언급했듯이, AI 아티스트는 전통적인 의미의 훈련을 받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는 기술자나 엔지니어이며, 이는 상당히 다른 경로입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AI 협업 시장'과 '전통 미술 시장'이라는 두 개의 시장이 공존하게 될 것입니다.
<작가, 작품, 소장 관점에서>
김정균 기자: 펠리즈 박 작가는 그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교수님의 안목으로 보시기에 그의 예술 세계가 최근 활동에서 어떻게 더 심화되거나 확장되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이안 로버트슨 교수: 펠리즈 박 작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멀티미디어 창작물을 만드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이 그의 작품의 연장선에 있는지, 아니면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인지는 논의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들은 펠리즈 박의 재능과 기본 아이디어를 활용해 자신들만의 작품, 즉 거의 '제2의 세계'를 창조합니다. 제 생각에 펠리즈 박의 작품은 독창적입니다. 그가 이룬 것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영감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그것을 그의 작품에서 비롯된 '영감'이라고 봅니다.
김정균 기자: 교수님께서도 AI 기반 작품을 직접 소장하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컬렉션 중 한 점을 소개해 주시고, 소장하시게 된 특별한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이안 로버트슨 교수: AI 그림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한 점 소장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장이 너무 변동성이 커서 적극적으로 투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김정균 기자: 최근 전시에서는 펠리즈 박 작가와 AI의 협업, 그림달(Grimdal) 작가의 실험, 팀 DevRota 의 융합적 접근 등 다양한 AI 예술이 주목받았습니다.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발견하신 AI 예술의 진화된 특징이나 경향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안 로버트슨 교수: 저는 AI를 주류 회화와 조각에 영향을 미칠 '증강 기술'에 가깝다고 봅니다. 달리(DALL-E)나 미드저니(Midjourney) 같은 도구들은 이제 단순한 미술의 액세서리를 넘어, 근본적인 창작 활동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또한 새로운 XR 기술의 참여적 측면은 관객이 작품의 일부가 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다만 제가 AI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아쉬움은 그것이 복제품을 떠올리게 하며, 아직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신기술은 작가가 성공하는 방식 자체에 도전하고 있으며, 이는 매우 중요한 변화입니다.
<저작권과 디지털 감정평가 시스템에 대한 견해>
김정균 기자: 펠리즈 박 작가의 원작 기반 AI 창작물이 에이팟플랫폼스(APoT Platforms)를 통해 블록체인에 등록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생성형 AI 작품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귀속되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이안 로버트슨 교수: 핵심은 창작자가 누구인지, 즉 기계인지 예술가인지의 문제입니다. 만약 로봇이 예술을 만든다면 저작권은 로봇에게 있을까요, 아니면 그것을 발명한 사람에게 있을까요? 현행 저작권법은 기계가 아닌 인간의 저작권만을 인정합니다. 한국에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디지털 생태계를 혁신하는 기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견해로는, 저작권은 기계가 아닌 인간 예술가에게 항상 귀속되어야 합니다.
김정균 기자: 이러한 작품들을 공정하게 보호하고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디지털 감정평가 시스템의 필요성과 에이팟플랫폼스 같은 플랫폼의 역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안 로버트슨 교수: 에이팟플랫폼스가 실물 자산을 위한 블록체인 개발을 전문으로 한다고 들었습니다. 기존의 작가-딜러-컬렉터로 이어지는 미술 시장의 과정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플랫폼과 블록체인 기술이 미술품 구매 방식을 바꾸고 있는 것이죠. 이 분야의 가장 큰 문제는 사이버 범죄이며, 블록체인은 안전한 디지털 저장 및 작품 이력 증명과 관련하여 그 문제를 해결할 기술로 기대됩니다.
김정균 기자: 마지막으로, 이러한 시스템이 국제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이라고 전망하십니까?
이안 로버트슨 교수: 사이버 범죄는 AI 예술에서도 여전히 큰 문제로 남을 것입니다. 또한 AI 아트 NFT는 변동성이 매우 커 위험성이 높은 시장입니다. 따라서 AI에 대한 국제적인 저작권 표준을 확립하고, 디지털 자산 시장의 보안과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주요 과제가 될 것입니다.
<예술의 미래와 한국 미술계에 전하고픈 메시지>
김정균 기자: AI 시대에 '미래의 예술가'는 어떤 새로운 역량과 윤리적 고민을 갖춰야 할까요?
이안 로버트슨 교수: 저는 AI가 주류 회화와 조각에 영향을 미칠 증강 기술로서 예술 창작 과정 자체에 내재될 것이라고 봅니다. 새로운 XR 기술의 참여적 측면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이로 인해 앞으로는 AI 협업 시장과 전통 시장이라는 두 개의 시장이 공존하게 될 것입니다.
김정균 기자: 한국 미술계가 세계 무대에서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고 내적으로도 성숙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변화는 무엇인지요? 또한 이 과정에 직접 기여하고 싶은 역할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이안 로버트슨 교수: 한국은 스스로를 더욱 국제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고의 갤러리들이 아트페어에는 참여하지만 해외에 상설 지점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확장해야 합니다. 서울옥션 같은 곳은 최소한 국제 시장인 홍콩까지는 진출해야 합니다. 한국은 상품 수출에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이제는 미국이나 유럽처럼 예술을 위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합니다.
예술가 지원 정책 측면에서 보면, 한국에는 예술가들을 매우 잘 지원하는 훌륭한 문화부가 있습니다. 많은 지원금과 장학금이 있고, 유수의 대학들도 뛰어납니다. 한국 예술 작품들은 기술적으로 매우 훌륭하고 정교하게 잘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한국인들은 오랜 시간이 걸려 만들어진 작품을 수집하고 가치를 두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흥미로운 미학입니다. 저는 이러한 '예술에서의 공예적 가치(craft in art)'라는 개념을 해외에 수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구의 많은 사람들이 이제 단순한 아이디어를 넘어, 실질적인 제작 기술과 창작의 결과물을 보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단색화 이후로 한국 미술은 세계 예술 생태계의 필수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뒤를 이을 일관성 있는 새로운 움직임을 찾아야 하며, 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아마도 박서보 작가와 같은 심오한 추상미술의 미학을 바탕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의 기여에 관해서는, 저는 한국 미술 생태계에 깊이 통합되고 싶습니다. 현재 키아프(KIAF) 컨설팅을 즐겁게 하고 있으며, 서울옥션 같은 기관의 국제화를 돕는 컨설팅도 하고 싶습니다. 이곳 딜러 시장에 더 많이 관여하고, 아직 충분히 해보지 못한 작가 스튜디오 방문도 더 하고 싶습니다. 한국 미술 시장의 핵심적인 일원이 되고 싶습니다.
김정균 기자: 현재 활동하는 한국의 예술인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이안 로버트슨 교수: 가능하다면 대형 갤러리, 특히 해외 갤러리에 합류하고 그곳에서 전시를 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국제적으로 성공한 한국 작가들의 좋은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베니스 비엔날레 같은 플랫폼을 통하거나 유수의 서구 미술관들의 주목을 받아 그들의 기획에 참여하는 것이 그 방법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꿈>
김정균 기자: 교수님,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꿈을 묻고, 하나씩 모아 기록하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터뷰의 끝에는 꼭 이 질문을 드리곤 합니다. 여러 변화와 도전 속에서 지금 이 순간, 교수님께서 개인적으로 꾸고 계신 꿈이나 열망은 무엇인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이안 로버트슨 교수: 저는 한국 미술 시장의 핵심적인 일원이 되고 싶습니다. 물론, 그것이 제가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입니다.
김정균 기자: 말씀처럼 한국 미술 시장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응원합니다.
김정균 기자: 교수님, 오늘 귀한 시간을 내어 깊이 있는 통찰을 나눠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안 로버트슨 교수: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또한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단지 예술의 기술적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 자리가 아니었다.
우리는 그 변화가 예술가의 삶, 시장의 질서, 그리고 예술을 통해 꿈꾸는 세상의 방향성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되짚는 사유의 여정을 함께했다.
이안 로버트슨 교수는 AI와 전통 예술, 기술과 철학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균형 잡힌 시선을 제시했다.
그의 통찰은 협업의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에게 하나의 좌표이자, 한국 미술계가 향해갈 새로운 길 위에 비추는 의미 있는 조명이 될 것이다.
※ 본 인터뷰는 케이리즈갤러리 김현정 대표의 주선과 장소 협조로 진행되었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