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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기록으로 만나는 사진 속 용산과 한강 개발

서울기록원,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수집 기록으로 용산기지 콘텐츠 선보여

 

뉴미디어타임즈 이경희 기자 | 서울기록원은 소장기록 중에서 중요기록물을 선별하여 시민들에게 다양한 온라인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콘텐츠는 ’22년에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s of Records Administration)에서 수집한 기록을 토대로 구성했다.

 

서울기록원은 2019년 개원 이래 이용자들이 효과적으로 소장기록을 검색·활용할 수 있게 온라인 카탈로그를 만들어 홈페이지에 제공하고 있다. 소장기록이 어떻게 생산되고 구성됐는지, 기록을 계층별로 정리하고 상세히 기술해서 서울기록원 소장기록을 살펴보는 데에 유용하다.

 

아울러 공공기록과 수집기록으로 온라인콘텐츠도 서비스하고 있다. 서울시의 다양한 시정 모습을 보여주는 ‘서울사진 아카이브’, 서울시 공공 미술 프로젝트 ‘서울은 미술관’, 소장기록으로 제작한 ‘공군사관학교에서 보라매공원으로’ 등 총 13개의 콘텐츠로 역사, 교육, 미술, 건축, 도시개발 등 다양한 주제의 온라인콘텐츠를 볼 수 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청(NARA)에서 수집한 기록으로 제작한 콘텐츠는 ‘용산기지 건물 #5042’와 ‘항공사진 속 용산기지’이다. ‘용산기지 건물 #5042’는 일제강점기, 6·25전쟁, 5·16군사정변, 12·12사태 등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고스란히 겪은 장소로 역사적 사건과 이야기를 사진과 문서, 지도로 설명하고 있다. ‘용산기지 건물 #5042’에서 5042는 용산기지 건물의 번호로 건물 명칭으로도 사용한다.

 

용산기지 건물 #5042는 1941년 일본의 ‘조선군사령부 제2청사’로 사용됐다. 태평양전쟁 시기 조선에 주둔한 일본군은 미군을 상대로 벙커형 정보작전센터를 구축했는데 이 건물이 #5042이다. 일제강점기 용산기지 건물 중 유일하게 철근콘크리트로 지은 건물로 지금도 육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1945년~1947년까지 미7사단이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사령부 벙커로 사용했고, 1949년~1950년까지 대한민국 육군본부가 사용했다. 그러나 6·25전쟁이 발발하자 6월 28일부터 7월 4일까지 북한군 3사단이 일시 점령했다. 1953년 7월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미8군은 전방지휘소(Advance CP. Eighth Army Headquarters)로 이용했으며, 현재 이 벙커는 한미연합사에서 사용 중이다. 일명 사우스 포스트 벙커(South Post Bunker)로 불린다.

 

‘항공사진 속 용산기지’는 1940년대와 1960년대의 용산 일대를 찍은 항공사진 기록이다. 1945년 9월 4일 용산과 용산기지 일대를 찍은 사진을 보면, 미군 항공단 소속 콜세어(F4U Corsair) 아래로 남산과 일본군 용산기지, 용산역과 조병창 등 주요 건물을 볼 수 있다.

 

1963년 10월 16일 용산 헬기장 북쪽을 찍은 사진도 있는데, 최근에 개방한 용산공원 부지와 현재 대통령실이 위치한 국방부 부지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서울기록원 소장기록 중 선별하여 제작한 콘텐츠로는 ‘서울의 도시성장과 환경 기초시설’이다. 서울은 6·25전쟁으로 폐허가 됐지만, 인구 1,000만의 도시가 되기까지 반세기가 걸리지 않았다. 급속한 도시성장과 그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정책 등을 서울기록원 소장 기록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강종합개발사업’과 관련한 서울기록원 소장 기록은 1982년 여의도 둔치에서 개최한'제2차 한강종합개발사업 기공식'과 1983년 6월 한강종합개발사업 중 하나인'강남로 확장 및 입체교차로 건설' 기록, 1984년'뚝도(뚝섬) 보광동 통합취수장 이설공사'와 1963년'후암동 하수도 공사' 사진기록 등이 있다.

 

서울의 도시기반 시설 구축에 중요한 계기가 된 한강종합개발사업은 1·2차로 나눠서 추진했다. 1차 개발(1968~1979)에서 한강의 3개년 개발 계획을 수립했고, 강변도로 건설, 공유수면 매립, 잠실과 여의도 개발을 추진했다. 2차 개발(1982~1986)은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했는데, 한강변 정비, 한강 시민공원 조성, 올림픽대로 건설 등의 사업을 추진했다. 이 사업으로 서울의 모습은 대대적으로 변모했고 관련 사진 기록과 문서를 통해 한강의 변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9월 15일 서울기록원은 원내 5층 컨퍼런스룸에서 ‘제2회 소장자료 정리와 서비스 사례 발표회’를 개최한다. 이번 발표회에서는 서울시 소속 문화기관별 소장자료와 컬렉션 구축 현황을 공유하고, 기관별 온라인 서비스의 상호 연계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시간은 13:30~17:30까지이며, 아카이브에 관심 있는 시민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현장은 선착순 50명까지 참석 가능하며, 온라인 유투브로 생중계할 예정이다.

 

세부 발표 내용으로는 ‘문화기관간 정보 및 데이터 공유와 활용(서울기록원)’, ‘아트 아카이브의 구축과 온라인 서비스(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서울역사아카이브의 운영과 활용(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 관련 자료의 서비스 방안 모색(서울역사편찬원)’ 등이 있다. 해당 발표는 아카이브 전문가들이 실무 경험을 토대로 발표할 예정이어서 소장자료에 대한 정리와 분류기준, 기관별 온라인 서비스의 특징 등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서울기록원이 ’22년에 개최한 ‘제1회 소장자료 정리·기술 사례 발표회’에서는 국립중앙도서관, 국립현대미술관, 한국영상자료원 소속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기관별 소장자료를 어떠한 방식으로 정리·기술하는지 공유했고, 카탈로깅 서비스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에 선보이는 서울기록원 온라인콘텐츠와 ‘소장자료 정리와 서비스 사례 발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담당자에게 문의할 수 있으며 서울기록원 누리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서울기록원 고경희 원장은 “새롭게 제공하는 기록정보콘텐츠를 통해 서울기록원 소장기록에 대한 가치를 재발견하고, 아카이브 관련 전문가들이 실무 경험을 토대로 발표하는 만큼 기록정보서비스 방안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하며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